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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만지고 옮기고… 격식 파괴한 ‘놀이터 미술관’

작성자
헬로우뮤지움
작성일
2017-10-31 10:41
조회
2291
[김종대 기자] [입력 2017-05-10]

얼마 전 마을 만들기 자문회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잘 키울 수 있는 마을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호만 있을 뿐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의 어떤 학자는 아트갤러리, 부티크숍, 카페가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마을의 개성이 없어지고 상업화되면서 결국 원주민들이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업화된 마을 개발로 인해 주민들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곳들이 생겨나 문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을계획과 시설물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한 때다.

서울 금호동에 위치한 헬로우뮤지움은 동네미술관을 표방하는 어린이 전용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2007년 강남에 터를 잡았다가 문화 기반시설이 부족한 주거지역을 찾아 2015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헬로우뮤지움은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것이 많다. 우선 보기만 하는 미술관이 아닌, 만지고 옮기고 참여하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작가들의 작품이 어린이 관람객들의 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벽에 걸린 작품들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걸려 있다. 모든 전시물은 만드는 과정이나 참여방법을 소개하는 작은 그림들을 함께 준비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1층 미술관 유리 벽면은 작가의 캔버스이자 아이들의 낙서장이다. 미술가가 그려 놓은 바탕 그림에 아이들이 덧그림을 그려 넣는다. 헬로우뮤지움은 일반적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격식이 없다. 만지고 뛰고 참여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프로그램에만 격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헬로우뮤지움 건물도 격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예전에 마을병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어린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우선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착용해야 한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아무 데나 눕거나 앉아서 그림을 감상하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다.

병원으로 지어진 당시의 모습도 살뜰하게 보존하고 있다. 계단마다 현 위치를 알려 주는 황동으로 된 층 표시는 환경문제로 요즘은 쓰이지 않는 현장물갈기 바닥을 유물처럼 보여주고 있다. 병실이나 진료실로 쓰이던 작은 공간들은 미로처럼 연결돼 있어 공간탐험의 즐거움을 준다. 옛 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지혜롭게 활용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곳곳에도 흥미를 유발하는 소품들이 즐비하다. 옥상에는 아이들이 그린 알록달록한 벽화를 배경으로 작은 텃밭이 반겨준다. 옥상 곳곳에 있는 나무 평상들은 건물 증축을 위해 뽑아뒀던 구조물들을 안전하게 감추기 위해 마련된 결과물이다.

헬로우뮤지움의 결정적인 재미는 화장실에서 찾을 수 있다. 벽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그 흔한 타일도 사용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한 세면대는 옛날에 대한 향수와 함께 신기함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헬로우뮤지움은 단순한 미술관을 거부한다. 어린이들이 집 앞 놀이터에 가는 것처럼 미술관에 와서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동네미술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곳은 헬로우뮤지움이 벤처기부펀드의 도움을 받아 문화공간이 필요한 동네에 설치한 동네미술관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이다.

헬로우뮤지움은 앞으로도 제2, 제3의 동네미술관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하니 다른 동네에서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주는 시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은 살기 편한 동네라는 뜻이다. 그런데 편리함을 넘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정서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동네는 없을 것이다.

헬로우뮤지움에서 나와 길을 걷다 보니 연녹색 잎사귀를 단 가로수들이 5월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5월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아름다운 초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새순들이 만들어낸 초록의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자 5월의 새순과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이 5월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이 성장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어린이들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